Noosa Heads 의 한 선착장


:: 오래 남는 붉은색 추억... ::


언제부터일까. 

뜨는 해 보다 지는 해에 생각이 더 많아진 것이.


그것을 처음 느낀 것은 아마 호주의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며 여행을 시작한 2009년으로 기억된다.


Noosa 는 워킹홀리데이의 일을 모두 마치고 계획한 짧은 케언즈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퀸즐랜드의 대표적인 휴양지였다.

그대로 브리즈번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모두 가지고 남은 여행 계획을 마치면 그대로 호주를 떠나는 그런 일정이었다.


지는 해를 보며 지난 워킹홀리데이의 시간을 되 돌아보았는지도 모른다.

지는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할 하루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지는 해를 보며 나도 그대로 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석양은 그런 존재였다.


' 되돌아보며 ', ' 두려운 ' 그런 존재.


아마도 지는 해에 그러한 마음이 든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다짐은 충분했지만,


' 내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 하는 마음이 지는 해와 함께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다짐 ' 만으로는 안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에... 


' 다짐 ' 만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기에

#Noosaheads



그 뒤, 

Noosa 에서의 석양에 대한 기억이 오래오래 남아서였을까?

그 뒤로 여정지 에서는 날이 좋으면 석양을 눈과 가슴 그리고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장소를 찾곤 했다.


멋진 석양은 여행지의 훌륭한 추억이 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Noosa 의 석양...

그것은 나에게 오래오래 남을 ' 강렬한 붉은색 추억 ' 이 될 것이다.


The End of Travel Essay No.15

#humanessay #humantravel #누사헤드 #NoosaHeads #석양 #Sunset


강렬한 붉은색 추억 그리고 삶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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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U to #GDK by #W61752 

단지 항공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단스크 공항으로 향하였다.



열네 번째 이야기 - 여행 그리고 만남(2) -

:: 그해 가을, 그와 그단스크를 만나다. ::



2011년 가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Creative Commons 의 큰 행사가 있었던 그 가을,

( Creative Commons Global Summit 2011 Poland >> https://creativecommons.org/tag/global-summit-2011/ )


2005년 이후로 6년만에 유럽행을 준비하면서 두개의 거점을 잡았다.


여정의 관문으로는 핀란드 헬싱키,

폴란드의 관문으로는 폴란드 그단스크…


헬싱키는 그 전 노르웨이와 스웨덴만 방문했던 북유럽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줄 그 해 여행의 관문이었고,

폴란드의 그단스크는 그냥 핀란드에서 넘어가기 쉬운 저가항공 Wizz Air 가 취항하는 곳이었다.


' 그렇다. 이유는 그냥 싼 항공편이 존재한다는 것 뿐이었다. '


고즈넉한 그단스크(Gdansk) 강변에서...



숙소의 첫날 밤부터 숙소에 붙어있는 1층의 펍이 ' 한잔 하시게 ' 라며 나를 불렀다.

동유럽 도시의 저녁 풍경은 밤새 술을 끌어와도 모자를 감흥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알게된 친구 앤드류 폴,

그는 호주의 멜버른에서 온 여행자로 3일간 이 작은 도시의 추억을 만들었던 유쾌한 여행친구였다.



점심부터 맥주 그리고 엽서, 일기... 여정은 그렇게 기록된다.



여정을 천천히 즐기는 법을 아는 친구 앤드류.. 



그단스크는 과거 한자동맹에 소속된 항구도시로 폴란드 무역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곳 이었으며, 수 많은 전쟁에 휘말린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무역으로 인한 영광의 흔적,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비극의 흔적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곳을 걷고,

그곳을 보며,

그곳에서 만났음을 신기해 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관광지이지만 북적이지 않았고, 요란스럽지 않으며, 천천히 눈에 담고 싶었던 풍경 뿐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그곳.


모투아바강(Motlawa)강의 고요한 물결이 마음의 평온함을 주었던 그곳.


그곳 그단스크(Gdansk)


브라마 주라브(Brama Zuraw )



모투아바강(Motlawa) 강변



음악을 즐기고, 춤을추고 앨범까지 구매 했던 흥부자 앤드류..



Jump !!! on Gdansk



그단스크의 향수는 비단 이 도시에 그치지 않았다. 항구도시이지만 바다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곳..

밤이 되면 으슥해 지지만, 그 으슥함이 옛 추억의 향기를 그대로 배달 해 주는 듯하는 그곳.


그단스크(Gdansk).


그 그단스크에서 그와 나는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바다와 가까운 곳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소폿(Sopot)의 역사..



그단스크(Gdansk)에서 열차를타고 약 30분…

바다내음이 코끝을 스쳐가는 소폿(Sopot)을 거닐기 시작하니, 동네 음식을 먹자고 외쳐대는 배의 꼬르륵 소리가 나서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레스토랑 한곳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신중하게 골랐던 그..



레스토랑 Monte ECO 1992

피자가 일품이었다.






말이 필요없는 피자와 맥주 조합..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스마트폰.



식당 내부..



맛있는 맥주
맛있는 피자
맛있는 풍경에 취해 그와 이야기하고 Staff들과 이야기 하다보니 하늘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졌다.

친해진 Staff 들과는 일 마치고 다시 만나기로하고 가게를 나서며 이 항구도시의 시내를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Molo 부두가 입구


걷다보니, 목재로 만들어긴 기나긴 Molo 부두의 입구가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하게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이 기나긴 부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각자가 꿈꾸는 여행뒤의 생각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이자, 여정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길 줄 아는 친구였다.

짜증 날 만도 한 나의 이런 저런 컨셉(?) 사진에 적극적으로 응해 주었다.


그래서 일까?? 그와 함께 찍은 한장 한장을 찍었던 순간이,

지금 이순간 하나 둘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Molo 부두..

' 고독한 컨셉으로 찍어보자 ' 라고 했던 것 같다.



그가 담은 나



내가 담은 그



그와 나는 폴란드의 작은 항구도시 Sopot 에서  컨셉을 가장하여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단스크(Gdansk)에서 따라온 생각의 고리들은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정리가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 우연한 만남도 각자의 여행 목적을 이루는 작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


Molo 부두, Sopot

우리는 각자의 목표와 목적을 향해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드류와 부두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식당에서 만난 Staff 들과 만나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향하였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이와 만나서,

낯선 항구로 왔고,

낯선 식당에서,

낯선 이들과 한 약속으로,

낯선 선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낯선 곳에서 남겼던 그와의 이야기...




낯선 그들이 즐기는 저녁..

결코 낯설지 않았다.


일을 마친 폴란드 친구들과 향했던 선술집..

기본적으로는 영어로 대화를 진행하였지만,


폴란드어 & 영어 & 한국어


로 하면 ' 이런 표현들이다 ' 라고 나누었던 문화의 교감.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적극적인 사람들.


단 하루의 추억이었지만, 뇌리속에 강열하게 남아있는 시간들이었다.


Sopot 의 선술집 ' Stary Rower '



종이에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나누었다.

진지했던 순간.


이들이 오래오래 기억이 남을 수 있는건 지금도 페이스북이라는 수단으로 소식을 주고 받고있기 때문이고,

단 하루의 추억 이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 다시 만나자 ' 라고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의 추억의 한 장을 함께 남겼다.



Sopot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그와 나는 그단스크(Gdansk)로 돌아와 맥주를 더 함께하였다.


나는 하루 더,

그는 이제 다른 여행지로..


호주에서 그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꽤나 오랜시간동안 이야기를 더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다.



' 그리고 그와 헤어졌다. '



한번 돌아다녀 보았다고 헤매지 않았던 구시가지



Basilica of St. Mary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in Gdańsk

그단스크(Gdansk) 성모승천 대성당의 웅장함 



점심으로 러시아 음식을 즐겼던 중심가의 광장(Dlugi Targ) 


이틀을 함께 다닌 그는 없었지만, 그단스크의 나머지를 담으며 이 도시와의 작별을 준비하였다.


바르샤바 Global Summit에서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였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엽서를 적었다.


헬싱키에서부터의 사진을 보며 일주일이나 지난 여정을 아쉬워하였고,

SNS 통해 여정에서 만난 이들과  추억을 공유하였다.


그렇게 폴란드 북부 도시 그단스크(Gdansk)에서의 시간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카페에서의 시간.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렇게 그단스크의 마지막 저녁 일정은 끝났다.


꽤나 오랫만에 오랜 시간동안 묵혀놨던, ' 그단스크 ' 라는 서랍을 꺼낸 것 같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잊혀져있던 그날의 추억을 되 살리기 위해, 그날 남겼던 많은 이야기를 다시끔 복기한 것 같다.



' 그 ' 와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서 랄까...



2014년, 5년만에 호주를 방문하기 전 난 앤드류에게 이메일 한통을 보냈다.

그와 헤어질때 ' 다시 호주를 방문한다면 꼭 멜버른에 들르겠다 ' 라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인데, 그의 회신은 없었다.


그래서 오랫만에 그의 페이스북을 방문을 하였다.

하나같이 그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글…


그는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매년 그의 생일은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 그를 추모하는 글이 지금도 올라오고 있다.


이 글을 쓰며,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시끔 떠올라 그단스크의 기억이 더욱 뚜렷해 짐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몇만일 중의 단 3일이었지만, 그 기억은 잊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 글을 쓰며 꽤나 오랜 시간 사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가 좋은 곳에서 평온하게 즐거운 삶과 여행을 추억하길 바라며, 

그단스크의 추억을 담은 이 글을 그에게 바칩니다.


그날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여행의 흔적은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Hey Andrew,

I really hope to meet you again when I go to Australia that is because I'd been feeling you are going to be great friend on my trip. 

We can not drink beer together anymore. But, I can recall our memory of Gdansk and Sopot.

R.I.P. my friend.

See you.


The End of Travel Essay No.14

#humanessay #humantravel #그단스크 #Gdansk #Sopot #Memory


With Andrew Poll In Gdansk

그와 함께한 그단스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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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2003년 8월 11일



열세 번째 이야기 - 여행 그리고 청춘(3) -

:: 여행 40여일째.. 지친 청춘이 걸었던 오르막길 ::


2003년 8월의 어느날, 


복학 전 배낭여행으로 계획했던 여정은 어느덧 40일이 지나가고 있었고,

지친몸이 휴식할 수 있도록 암스테르담에서 무심히 탄 야간열차로 스위스로 이동하였다.


라우터부르넨역... @스위스

무언가 홀린듯이 라우터부르넨으로...


인터라켄은 스위스를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곳…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1박만하고 무언가에 이끌리는 느낌으로 라우터부르넨으로 향하였다.


' 숙소 예약은 당연히 안한 채 ' …


열차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의 ' 세계 일주의 시작 ' 이라는 말에 끌렸을까.

아니면 그분이 잠시 관두었다는 ' 방송 작가 ' 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였을까.


' 워낙 인기있는 호스텔이라 방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 

라는 말은 귓등으로 들어갔는지...


나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 그 분이 예약했다는 호스텔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스토키 하우스 ' 


라우터부르넨의 중심가에서 조금은 떨어진 그곳으로 함께 방문한 그 곳은 70대의 스토키 할머니가 운영하는 친근한 곳.


운이 좋게 배정 받은 곳은 군대가 생각나는 한켠의 눕는 곳 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 그곳에서 일주일 가까이 묵을 줄이야… '


라우터부르넨에서의 하루하루는 무언가 정리하는 나날들 이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왠지 모르게 바쁘게 지나온 듯한 나의 여정을 되 돌아 볼 수 있었고,

매일 저녁 나는 생닭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으며,

여행자들과 함께 25센트짜리 맥주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과 함께

지친몸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호스텔의 방명록을 읽던 중 ' 쉴튼호른 ' 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발 걸음 ' 


이렇게 정상을 향하는 이유는 각자 다른,

' 젊음 ' 이라는 두 글자로 4명의 쉴튼호른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한 형님은 결국 등반스틱 하나를 구매했던 오르막길…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해발 800m 정도 되는 라우터부르넨에서 정상 높이가 3000m 가까이 되는 쉴튼호른까지의 등산이라는 이름의 등반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경사는 가파렀으며, 출발할 때 그 흔한 등산스틱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미 시작한 일 멈출수는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 조금만 더 힘내 ' 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 힘내 ' 


라우터부르넨을 떠난지 5시간이 지났을때 였을까. 

허벅지 부근이 좀 이상하다. 

그렇다. 여행을 하다 몇일 쉬었던 내 다리는 깊은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쥐가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


천천히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을 옮기며 정상으로 올라갔다.


힘들땐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걸음을 내 딛기 시작하였다.


뒤를 돌아보면 걸음을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또 다른 2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4명 모두 왠지 모를 뿌듯함에 밝은 미소와 서로 한 마디씩을 건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수고했어 ' 라고...


' 수고했어 '


오르막길이 있다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나를 제외한 분들은 케이블카로 내려가기로 결정을 하였고,

나는 오르면서 못 본 풍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담기위해 등산스틱 하나를 빌려 그것에 의지하며 다시 라우터부르넨을 향해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해가 지기 전에만 내려가보자 ' 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등산스틱 하나로 의지하며, 다시끔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올라올때 보지 못했던 많은 광경들에 즐거웠고, 어느덧 다리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 해가 지기 전에 못 내려가면 어떻하지? ' 라는 걱정은 


이내 곧


' 내려갈 수 있어 ' 로 바뀌기 시작하며, 지친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주위의 경관은 내리막길의 큰 힘이 되었다.


내려오는 4시간여 동안 

내 두귀에는 ' 이승환 ' 의 음악이 흘렀으며,

내 두 눈으로는 알프스의 산을 시종일관 담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는 그동안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하였으며,

여행 후 ' 복학생 ' 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지에 대한 고민은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곧 사라졌다.


그렇게 내리막 길을 내려오고 또 내려왔다.


' 뭘봐? 해지기 전에 어서 내려가!! ' 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해가 뉘엿 뉘엿 저물기 시작한 시간 8시 30분.

라우터부르넨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장장 12시간의 쉴튼호른의 왕복의 시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나는 이 한 마디.


' 즐거웠다 ' 


12시간만에 들어선 마을에 들어가며 생각했던 이 한마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정의 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때로는 미친듯이 힘들든 순간이 다가올 수 있다.


그래도 마침내 ' 즐거웠다 ' 라고 마무리 한다면, 그 여정은 언제나 즐겁게 기억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즐거운 추억을 뒤로 한채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05년의 겨울 유럽 배낭여행 인솔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라우터부르넨에 잠깐 방문할 수 있었다.


2005년 겨울 그곳에 잠시 들렀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 보고 싶어서였을 것 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로 임시 휴업이었던 스토키 하우스로 향하였다.

 

쉴튼호른을 다녀온뒤의 벅찬 느낌을 남기기위해 적었던 방명록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나를 기억못했던 스토키 할머니에게 2003년 8월의 방명록을 꺼내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였고,

할머니는 책장을 유심히 보아 고르더니 기억을 하지 못하는 낯선 동양인에게 ' 2003 AUGUST ' 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 노트 하나를 건내 주었다.


2005년 다시 만났던 2년전의 이야기


그것을 읽어 내려가며, 눈가에는 촉촉한 무언가를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돌이킬 수 없는 2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만난 방가움과 당시의 수 많은 잊혀진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춘이라고 ' 주장 ' 하는 지금.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있는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어찌보면 바보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지친 청춘이 오르막길을 오르며 느낀…

그리고 다시끔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느낀 것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좋은 원동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이든다.


두려움이 많아진 나이, 지친 30대.

그날의 지친 청춘을 다시 생각하며, 다시끔 오르막길을 걷는데 방해가 될 두려움과 주저함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30대들이 2017년을 더욱 가슴을 활짝펴고 살아갈 수 있기를...


The End of Trave Essay No. 13

#humantravel #humanessay #오르막길 #지친청춘 #여행 #스위스 #라우터부르넨 #쉴튼호른 #힘내자30대


이 방명록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 오르막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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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D to #UKB #BC101

처음 탑승한 일본 국내선 항공편이었던 스카이마크 101편



열두 번째 이야기 - 여행 그리고 이동(6) -

:: 고베라는 추억으로... ::



'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 


일본 교환유학을 다녀온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해를 거듭하며 숫자가 늘어나는만큼 추억과 기억의 깊이도 늘어만 간다.


2016년 8월의 어느날 동경에서 고베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이유야 복잡하였지만, 예약을 하였다.


예약을 하였으니 갔어야 했다.



고베의 어느 한 멘션의 209호

1년간 생활했던 곳의 우편함



고베공항은 2006년 2월 16일에 개항을 하였다. 

1년간의 교환유학 생활을 하기위해 2006년 3월 31일에 일본에 입국을 하였으니, 내가 고베에 도착하기 약 한달 하고도 보름정도 전에 오픈을 한 셈이다.


' 그런데 난 왜 한번도 안 가봤지? '


고베에 1년간 사는동안 고베공항에 단 한번도 방문한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고베에 버스도 기차도 아닌 비행기를 타고 갔다.


' 왜 비행기였을까? '


10년전 방문하지 못한 공항이라는 존재에 대한 아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10년전 교환유학을 했던 도시에서의 추억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생각보다 정리할 기억이 많다 ' 


그렇다 고베는 그러한 도시이다. 정리할 것이 많은 그런 도시이다.


랜딩 10분 전...

' ... 했다면 ' , ' ... 였다면 ' 이라는 글귀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질 않았다.



맑은 하늘때문이었을까?

기억에 남아있는 고베의 곳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선회하며 천천히 하강하였기 때문이었을까?

고베의 많은 곳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비행기의 좌현 창가에 앉아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에 남아있는 고베의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그곳에서 지냈던 1년의 시간이 랜딩까지의 10여분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런곳을 가고 있던 것이다.

그런곳을 하늘을 날며 가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12월 31일, 고베의 메리켄파크

그날도 약 8개월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스쳐간 시간은


' 즐거움 ' 과 ' 아쉬움 '

' 기쁨 ' 과 ' 후회 '

' 기억하고 싶은 추억 ' 과 ' 지우고 싶은 추억 ' 으로 나뉘어 순식간에 지나갔다.


1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여행지라기보다 인생에서 주어진 수십년의 시간 중에 짧지 않은 나날을 그곳에서 보냈기에,


그곳으로의 이동은 언제나 특별한지도 모른다.


' 그렇다. 고베는 나에게 너무나 특별한 동네이다 '


고베를 떠나기 하루 전이었던 2007년 3월의 끝자락

난 추억이 붙어있는 벽을 찍고, 그것을 떼어내며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억이 존재한다.

그 소중한 기억은 각자의 방법으로 ' 추억 ' 으로 남긴다.


그 ' 추억 ' 을 되도록 불러내어 


' 그 땐 그랬지 ' 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 추억의 정리 ' 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 추억 ' 과 정면으로 즐겁게 맞이할 용기라는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고베는 나중에도 용기있게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곳이길 바라며…


^^


The End of Travel Essay No. 12

#humantravel #humanessay #교환학생 #여행 #기억 #추억 #고베





Good Bye 岡本駅(Okamoto Station), 26 AUG 2016

집 근처이기에 항상 이용했던 오카모토역

언젠가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방문하리... :)


[여행 그리고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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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RADA FAMILIA BARCELONA, 2016

그곳은 여전히 공사중이었고, 나는 13살을 더 먹었다.



열한 번째 이야기 - 여행 그리고 청춘(2) -

:: 청춘이기에 결심할 수 있는 것들 ::



한해 한해가 지나면서 나의 여행에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어딘가로 떠날때의 나의 손에는 배낭보다는 ' 캐리어 ' 가 들려있었고, 목적지는 마음이 편안한 공간을 찾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 시작했다.


' 그렇다. 무언가 현실부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 현실이 편하다. 복잡한 것은 무언가 싫다 '


왜 그랬을까? 역시 변하고 있을 것일까?


Gold Coast, 2014

5년만에 찾은 호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었다.



다시 배낭을 들고, 방향을 호주로 향하길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5년전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낭 하나를 메고 그렇게 홍콩에서 골드코스트로 향하는 에어아시아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 불안한 브리즈번의 첫날을 보낸 서른살의 자신의 모습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



BRISBANE, 2009

호스텔 생활을 마치고 구한 나의 첫 생활공간은 거실 한켠이었다.



' 뭐가 그렇게 자신이 넘쳐흘렀길래 그 고생을 할 결심을 했을까? '


5년만에 찾은 브리즈번에서, 생활을 했던 동선을 걸으며 그때 적었던 일기장을 복기해 보았다.

분명 자신만만한 표현으로 가득차있었다. 

근데 정말 그랬을까???


물음표만을 던지기에는 정말 그때의 기억은 처음의 불안함은 언제가부터 사라지고,

' 자신감 ' 이라는 단어를 가슴속에 새긴 채 다시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긍정적인 나의 모습을 찾은 기억이 하나 둘씩 되 살아났던 이유는 좋은 동료들과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생활을 통해 힘을 얻었고,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결심에 후회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과의 시간이 ' 소중하다 ' 라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 나는 청춘이야 ' 라는 다짐과 함께...


BRISBANE, 2014

5년만에 만난 CAPRI 주방 동료들, 우린 낮부터 밤까지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결심에 따르는 책임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 무게감을 더 한다.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 신중함을 더 한다.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노력을 요구하게 된다.

' 그렇다. 청춘이기에 결심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청춘이니깐 '


' 2009 HUMAN ' Noosa Beach, 2009

훗날 보고 기억하려고 해변가에서 불빛으로 메시지를 만들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언젠가 ' 젊음 ' 이 소중하고 그리워 질 때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 젊음 ' 뿐만이 아닌 마음의 ' 젊음 ' 
즉, ' 청춘 ' 의 마음은 

' 언제나 ' 

그리고

' 항상 '

가질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루하루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할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오늘이 있기에,
우리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

The End of Travel Essay No. 11
#humantravel #humanessay #여행 #청춘 #여행에세이 #배낭여행 #결심 #다짐

HELSINKI STATION, 2011

바르게 바라보자. 그곳이 곧 길이기에
결심한 것을 이행하자. 소중한 청춘의 시간을 이어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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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ly Human